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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찐득한 감각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몇 번을 걸어도 기묘한 이 감각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보폭을 맞추며 따라오던 녀석이 문득 시선을 돌려 갸웃거렸다. 저의 모든 생각과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녀석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설핏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괴물. 평범한 지구에서는 이 녀석을 이렇게 불렀겠지. 이곳이 평범한 지구와는 수 백, 수 천, 수 억 배 떨어진 곳이라는 것을 상기시키자 목 끝까지 한숨이 올라왔다. 어둡게 그늘진 얼굴로 눈앞의 문을 열었다.
"진호형!"
"야, 홍진호. 일찍 좀 다녀라!"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 하지만 익숙치 않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느지막하게 들어온 자신을 반겼다. 뒤따라오던 저글링이 뒤를 돌아 사라지고 문이 닫혔다. 자신 또한 준비된 자리에 앉으며 줄곧 날카로웠던 얼굴을 풀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 진영인데 몬 상관이야~"
얼굴을 가리던 커다란 후드를 벗자 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옐로의 모습이 드러났다.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그 눈동자는 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셋 중 홀로 이질적인 형태로 변한 그는 종족 특유의 괴기함보다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였다. 최고의 지배자만이 빛내는 황금빛 눈동자, 자유롭게 옷의 형태 변환이 가능한 특유의 피부, 등 뒤에 숨겨진 거대한 날개와 같은 촉수. 처음에는 너무나 이질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보여주기를 거부했던 그였지만 이세계에서 믿을만한 사람은 둘 밖에 없기에 지금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더 주위를 감시하라고 명한 후 옐로는 한숨 같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뭐야아, 둘 다 왜 자꾸 이쪽으로 오는 건데? 위험해지면 어쩔려구?"
"말도 마라. 테란에서 정치 싸움 하는 거 너무 머리 아프다. 나 그냥 여기서 살까?"
"요환이 형이나 저나 보는 눈이 많은데, 그래도 형은 그 눈을 통제할 수 있다 아입니까."
간소하지만 황제의 문양이 그려진 고급의 제복을 입은 박서와 푸른 보석이 박힌 황금 갑주를 입은 리치. 그리고 커다란 촉수를 가리는 붉은 망토를 휘갑은 옐로.
황제 박서, 집정관 리치, 오버마인드 옐로.
그들의 진짜 정체는 프로게이머 테란의 임요환, 프로토스의 박정석, 저그의 홍진호였다.
어느 날 밤, 세 사람은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빛에 휩싸였고 서로 뿔뿔이 흩어진 채 이세계로 떨어졌다. 마치 이세계에서도 이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세 사람은 아무리 본명을 알려줘도 발음하지 못하고 게임네임으로만 부르는 주변에 동화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진영을 치리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서로가 각자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것이 꿈이 아닌, 기이한 사건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주기적으로 몰래 만나서 근황을 나누고 어떻게 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끝없는 고민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항상 모이는 장소는 옐로가 지배하고 있는 저그의 진영이었다.
확실히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모든 것이 옐로의 지배하에 있는 저그의 진영 밖에 없었다. 수백의 눈과 귀를 동시에 봐야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줄 아냐고 반박하려던 찰나에 잡힌 한 형체에 옐로는 탁자 위로 손가락을 톡톡 쳤다. 하긴, 감시당하는 것보단 감시하는 게 더 낫겠지.
"임요환, 찐따같이 혹 달고 왔네?"
비식대며 웃는 옐로의 얼굴에 박서는 마른세수를 하였다. 죽일까? 묻는 눈빛에 어느새 차디찬 황제의 얼굴을 한 박서가 가차 없이 죽여 버려, 하고 답하자 벽 너머로 희미하게 고통에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피에 흥분한 아이들의 심장고동이 전해져오자 덩달아 상기된 옐로의 얼굴을 박서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리 절대 권력의 황제라도 테란을 하나로 묶는 건 힘들긴 하죠. 뭐, 프로토스도 밸로 남 말 할 처지는 못 되지만요."
위대한 젤나가가 선사한 강력한 문명 아래 통일된 사상을 공유하나 이들 역시도 파가 나뉘며 끊임없이 싸우는 꼴을 보는 리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런 리치를 웃으며 바라본 옐로는 시선을 돌려 박서를 바라보았다. 다리를 꼰 채 오만한 눈빛을 짓는 옐로의 모습에 박서도 따라 팔짱을 끼며 아까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시원하게 웃었다.
"잠행 나온 황제가 저그한테 위협받는 순간, 날 지켜주다 죽은 걸로 해두지 뭐."
"썅노무시끼! 나쁜 건 맨날 나지?!"
"야야 원래 게임에서도 저그는 악역이었잖아."
"네가 저그의 심정을 알어!?! 건방진 테란같으니라고!"
"크하하하하하! 햄들 너무 웃겨! 하하하하!!"
"시끄러 박정석! 이빨 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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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은 장편 대서사시가 기승전결로 이미 끝났기에 손이 따라갈 수가 없어서 이만 GG
아쉬우니 대략적인 썰로 풀자면 젤나가가 본래의 스타 세계는 망했다 생각하고 평행세계처럼 복제한 새로운 세계에 세 사람을 각각 황제, 초월체, 집정관으로 만들어버림. 원래 세 명은 오랜만에 만나서 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에 젤나가의 사이오닉 빔에 휘말린 것
먼저 테란에 떨어진 요환은 박서! 하며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 하며 침대 위에서 눈을 뜸. 홱 바뀐 풍경에 내가 언제 필름이 끊겼었지? 의아해하는데, 자기를 부른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음. 어제 연회 때 너무 달린거 아니냐고 타박하는 목소리에 무슨 소리 하는거냐고 지구에서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말하는 요환의 모습에 테란은 인상을 찌푸림. 무슨 소리하냐고 박서, 하니 자기 이름은 임요환이라고 알려주니 제대로 발음 못하고 물음표 백만개 띄우는 표정에 요환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차근차근 물으며 이곳의 정체를 파악함. 자기는 박서라는 이름으로 테란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었음. 이게 무슨... 아직은 모든게 낯설고 사사건건 뭐든 물어보는 박서의 모습에 주변 신하들은 황제가 왜 저러지 하면서 성실하게 대답해주는ㅋㅋ 그러면서 박서는 의구심을 가슴 깊이 품은 채 황제 생활에 적응해 나갔음
저그에 떨어진 진호 같은 경우에는 양수로 가득 채워진 불투명한 알을 찢으며 깨어났음. 허억- 이게 무슨 일이지? 숨을 몰아쉬던 진호는 자신의 몸의 위화감을 느끼고 황급히 살피니 저그의 형태로 변한 징그러운 자신의 모습에 욕을 함. 동시에 머릿속이 난잡해져 찬찬히 정리하니 드디어 깨어난 오버마인드의 부활에 기뻐하는 저그들의 생각을 읽어냈음. 홍수처럼 몰려오는 온갖 정보에 뭐가 꿈이고 뭐가 진실인지 헷갈려진 진호가 괴로워하자 정신체들이 모여와 경배하며 상황을 정리해줌. 오버마인드의 머릿속을 순간 읽어낸 정신체들은 자신과 이곳이 가짜세계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함구하였음. 그런 상황을 부정하고 싶고 눈 앞의 옐로를 너무나도 경외하기 때문에. 이곳에 떨어진 자신과 몸을 빠르게 수긍하고 주변을 정리해나갔음. 가짜 세계라는 것을 알지만 감정 공유를 하다보니 은연 중에 옐로는 이들을 아끼게 되었음
프로토스에 떨어진 정석은 갑자기 눈 앞에 달라진 풍경에 내가 술에 씨게 치였나? 하고 가볍게 뺨을 침. 눈 앞의 풍경은 마치 스타에 나오는 아이어였음. 황금빛 건물이 하늘 높이 찌르는 것을 올려다보다 문득 입고 있는 옷의 감촉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며 살피니 토스 특유의 갑주를 자신이 입고 있었음. 그러다 리치 집정관! 하며 부르는 집행관의 부름에 놀람. 꿈이라기엔 너무 리얼하잖아? 멍한 상태의 리치의 모습에 걱정하는 집행관을 달랜 후에 남몰래 이게 도대체 무슨 사태인지 찬찬히 조사하기 시작하였음. 동시에 게임 속에서만 보던 토스의 놀라운 광경과 문화를 즐기면서. 동시에 같이 빛에 휘말린 형님들은 괜찮은지 걱정하면서.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현실과 가짜를 혼동할 만큼 지낼 때 프로토스의 기술을 뺏자는 테란의 주장과 저그를 이대로 몰살시켜버리자는 프로토스의 주장과 테란을 숙주로 삼아 힘을 키워나가자는 저그의 주장에 각 정상의 위치에 군림하고 있던 세 사람은 고민하다가 그렇게 진행하기로 함. 그러다가 엎치락 뒤치락 세 사람은 만나게 되고 상황을 파악하게 됨. 옐로같은 경우에는 징그러운 자신의 모습을 들키기 싫어 피하기도 했지만 리치의 설득 끝에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음. 이후 주기적으로 세 사람은 저그 진영에서 만나 근황 나누고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함
어찌저찌해서 프로토스의 강력한 사이오닉 빔 + 테란의 기술을 이용하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 친황제파의 도움으로 몰래 다 만들었지만 발동 조건에는 거대한 힘의 폭발 즉 희생이 필요하였음. 박서는 다량의 저그들을 희생시키자고 주장하지만 옐로는 노하며 반대함. 어차피 이곳은 가짜라고 박서가 일침하지만 저그 하나하나에 애틋함을 느끼는 옐로는 그 제안을 피하였음. 셋이서 몰래 탈출하려는데 그나마 충족되는 조건을 가진 건 집정관인 리치 뿐. 리치를 당연히 희생시킬 수 없기에 옐로가 괴로워할 때 리치와 친하게 지내며 이세계의 이면을 알고 있었던 다템이 리치를 위해 자신이 희생한다고 나옴. 저희들을 고생하며 도와주고 끝내 목숨까지 내어주는 다템에게 고마움을 느끼던 셋은 넘어갈 준비를 함. 그러다 반황제파에게 걸려 잠시 지연되는 틈을 타 옐로가 먼저 가라며 시간을 끔. 박서가 옐로를 잡으려 튀어나가려는 것을 간신히 리치가 막고 아비규환일 때 정신체들이 재빠르게 옐로를 포탈로 밀어버리고 머릿속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고백하였음.
사실 자신들은 오버마인드를 처음 볼 때부터 알고 있었으며 오버마인드를 좋아하기에 그동안 함구했었다고. 자신들을 버리는 오버마인드를 원망하지만 끝까지 자신들을 사랑해주는 마음을 느끼고 알고 있기에 감사하다 하며 본능적으로 세 사람이 사라지면 이세계 또한 사라질 것을 알고 담담히 보내드린다고 함. 원래 세계를 가더라도 자신들을 기억해줄 수 있겠냐는 물음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울지 않았던 옐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당연히, 영원히 기억할 거라고 화답해 줌
그날 밤처럼 커다란 빛에 다시 삼켜진 세 사람은 다시 눈을 뜨니 셋이서 술 먹고 돌아가던 그 장소 그대로 도착함. 요환은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 앉았고, 정석은 핸드폰을 켜 시계를 확인하였고, 진호는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만히 서 있었음. 정말 긴 시간을 이세계에서 보냈는데 원래 세계에서는 전혀 시간이 지난 것이 없었음. 마치 꿈 같은 시간이었지만 세 사람은 이것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각자의 처소로 흩어지고 세 사람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음. 이후로 그때의 일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음.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그날의 일을 추억하였음
하하, 스타 한 번 해 본 적 없는 스알못 주제에 스타물 쓰깈ㅋㅋㅋㅋㅋㅋ
지니어스1 - 크라임씬123 루트로 콩팬이 되어버리고 결국 10년 전 게이머 떡밥을 까막눈으로 차근차근 먹다보니 스타세계관이 꽤나 매력적이라는 걸 느낌ㅋㅋ 게임 자체도 꽤 재밌는 거 같고? 다만 나는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벙커링 빼구..?) 당시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크씬 캐릭터로 먼저 구상한 게 있었는데 게이머 떡밥 먹다보니 스타물을 먼저 써버렸다. 이거 2.5D라고 해야하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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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하고 올리지 않았던 앜파 그림들. 그린 날짜는 뒤죽박죽. 2~3년 전 그림들인데 과거의 날 존잘이었군...
전부 분량을 골고루 그려주려고 했었다. 당시 그릴 때는 아직 루리 등장 전이라 루리는 없지만...
지금은 저렇게 그리고 싶어서 잘 못 그리겠다. 어떻게 그린거지???
아크파이브 결말은 정말... 노답...유고가 최애라서 융합차원에서 유고vs린 듀얼까지만 보고 중도하차한 거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잘한 일 같아^0^* 마지막편 잠깐 봤었는데 이거 뭔 병신같은.... 앜파는 3기 초반까지만 기억할래.. 캐릭터가 아깝다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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